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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전날 밤, 신발 감추기: 야광귀(夜光鬼) 전설의 재해석

설날을 앞둔 이 시기에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민속 신앙 중 하나가 바로 야광귀 전설입니다. 어릴 적 명절 전날 밤이면 할머니께서 신발을 방 안으로 들여놓으라고 하시던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단순히 아이들을 일찍 재우기 위한 겁주기용 괴담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속에 담긴 인류학적 의미와 조상들의 통찰이 매우 깊습니다. 오늘은 설 전날 밤에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야광귀'에 대해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야광귀야광귀는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밤에 빛이 나는 귀신이라는 뜻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설날 전날 밤인 까치 설날에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 세상의 집들을 돌아다닙니다. 이 귀신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현관에 놓인 신발 중 자신의 발에 딱 맞는 것을 찾아 신고 가는 것입..

무속신앙 2026.02.09

제사(祭祀)의 사회학적 기원 '신인공식(神人共食)'

2026년의 설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흩어진 가족들이 모인다는 반가움도 잠시, 대한민국 성인 남녀 대부분은 '명절 증후군'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립니다.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의 시간 낭비, 제사상 차리기를 둘러싼 고된 가사 노동, 그리고 친척들 간의 미묘한 신경전까지. 현대인들에게 제사는 어쩌면 효율성을 저해하고 갈등을 유발하는, '남은 음식 처리가 곤란한 노동'으로 전락해 버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잠시 불평을 거두고 인류학적인 호기심을 가져봅시다. 도대체 인간은 왜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조상신을 위해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리고, 그 앞에서 절을 하고, 결국 그 밥을 다시 나누어 먹는 것일까요? 얼핏 비합리적이고 비생산적으로 보이는 이 행위가 수천 년간 지속된 데에..

무속신앙 2026.02.07

무속의 '굿'과 사이코드라마

현대 사회에서 무속 신앙, 특히 굿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중적입니다. 미디어에서는 흥미로운 오컬트 소재로 소비되지만, 현실에서는 비과학적인 미신이나 타파해야 할 구습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꽹과리 소리가 요란하고 돼지 머리가 올라가는 굿판을 보며 정신 의학적 치유를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각을 달리해 비교 종교학과 현대 심리학의 관점에서 분석해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프로이트나 융이 심리학을 정립하기 수백 년 전부터, 조선의 무당들은 이미 사이코드라마(Psychodrama)라는 고도의 심리 치료 기법을 통해 민중의 정신 건강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미신이라는 편견 뒤에 숨겨진, 치열했던 심리 치유의 현장으로서 굿을 재해석해 보려 합니다. 한(恨), 억압된 무의식의..

무속신앙 2026.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