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신앙

제사상에 올리면 안 되는 음식과 그 이유

주머니괴물 2026. 2. 11. 19:12

2026년의 설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제사를 주관하는 모든 분들에게는 일 년 중 가장 분주하고 신경 쓰이는 시기입니다. 차례상을 차릴 때마다 "이건 올려도 되나?", "저건 안 된다던데?" 하며 어른들의 눈치를 보거나 인터넷을 검색해 본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많은 분들이 제사상을 단순히 '조상님이 오셔서 배불리 드시는 밥상'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류학적 관점에서 제사는 이승의 후손과 저승의 조상이 만나는 영적 접속의 현장입니다. 우리가 와이파이 신호를 잡기 위해 주파수를 맞추듯, 제사상 역시 영적인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아주 정교하게 설계된 장치입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접속을 방해하는 강력한 '전파 방해 물질'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제사상 금기 음식들입니다.

 

도대체 팥, 마늘, 복숭아는 무슨 죄를 지었길래 수백 년 동안 제사상에서 퇴출당했을까요?

오늘은 금기 음식 뒤에 숨겨진 오컬트적 원리와 음양오행의 비밀을 파헤쳐 봅니다.


귀신을 쫓는 무기, 복숭아

제사상에 올라가는 과일은 계절마다 다르지만, 절대 불변의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복숭아는 절대 올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조상님이 생전에 복숭아를 좋아하셨어도, 제사상에는 금기시됩니다.

 

 

여기에는 동양의 오래된 무속 신앙이 깔려 있습니다. 복숭아나무(도목, 桃木)는 예로부터 귀신을 쫓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여겨졌습니다. 무당들이 굿을 할 때 복숭아나무 가지를 흔드는 이유도 잡귀를 내쫓기 위함입니다.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귀신(조상신 포함)은 음(陰)의 기운을 가진 존재입니다. 반면 복숭아는 태양의 기운을 가장 많이 머금은 열매이자, 극강의 양(陽)의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즉, 복숭아는 음기인 귀신에게는 마치 '불타는 태양'과도 같은 공포의 대상입니다.

 

후손들이 정성껏 제사상을 차려놓고(초대장 발송), 그 위에 복숭아를 올려두는 행위는

현관문을 열어놓고 입구에 기관총을 설치해 둔 것과 다름없습니다.

조상님이 들어오고 싶어도 복숭아의 강한 양기에 쫓겨 도망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입니다.


붉은색의 공포, 팥과 고춧가루

한국인의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간 김치와 찌개입니다. 하지만 제사상 음식은 유독 하얗고 밍밍합니다.

 

 

김치는 고춧가루를 뺀 백김치나 나박김치를 쓰고,

탕국이나 나물에도 붉은 양념을 하지 않습니다.

떡 역시 붉은 팥시루떡 대신, 껍질을 벗긴 흰 팥(거피팥)이나 콩가루를 묻힌 떡을 사용합니다.

 

이유는 복숭아와 비슷합니다. 오컬트적으로 붉은색피와 생명을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양(陽)의 색깔입니다. 동짓날에 붉은 팥죽을 쑤어 집안 곳곳에 뿌리는 이유도, 이 붉은색의 양기로 액운(귀신)을 막기 위함입니다.

 

 

앞서 말했듯 조상신 또한 본질적으로는 귀신의 범주에 속합니다. 잡귀를 쫓는 힘이 있는 붉은 팥이나 고춧가루는 조상신에게도 똑같이 작용합니다.

 

"조상님은 오시고 잡귀는 물러가라"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지만, 영적인 세계에서 필터링 기술은 그리 정교하지 않습니다.

 

붉은색은 적군(잡귀)과 아군(조상)을 가리지 않고 모두 쫓아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팥의 껍질을 일일이 벗겨 하얀 속살만 사용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며, 맛과 예법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했던 것입니다.


영적 후각을 마비시키는 향신료, 마늘과 파

제사 음식이 맛이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오신채(五辛菜), 즉 다섯 가지 매운 채소를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입니다.

한국 요리의 핵심인 다진 마늘과 파가 빠지니 음식이 밍밍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금기는 조상신이 음식을 드시는 방식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조상신은 육체가 없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음식을 씹어 삼키지 못합니다. 대신 음식에서 피어오르는 '향기'를 들이마시는 방식으로 식사를 하십니다.

 

이것을 전문 용어로 흠향(歆饗)이라고 합니다. 향기를 드시는 조상님에게 마늘이나 파 같은 자극적인 황 성분의 냄새는 식욕을 돋우는 향이 아니라, 영혼을 쫓아내는 독한 가스나 최루탄과 같습니다.

 

또한 단군 신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되려 했듯, 마늘은 야생성(동물적/귀신적 본능)을 제거하고 인간성을 찾는 식재료라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이미 인간의 삶을 마치고 영적인 존재가 된 조상님에게, 다시 인간의 육체성을 강요하는 마늘은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품격과 비늘의 문제, '치'자 생선과 비늘 없는 생선

제사상에는 조기, 돔, 민어 같은 고급 어종이 올라갑니다. 반면 멸치, 꽁치, 갈치, 삼치처럼 이름 끝에 '치'자가 들어가는 생선은 절대 올리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인류학적인 계급 인식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과거에 '치'자로 끝나는 생선은 흔하고 하등한 물고기로 취급받았습니다. "치사하다", "양아치" 같은 단어에서 보듯 '치'는 부정적인 접미사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최고의 정성을 다해야 할 조상님 밥상에 '싸구려'로 인식되는 생선을 올릴 수 없다는 효심의 발로입니다.

 

또한 뱀장어나 메기처럼 비늘 없는 생선도 금기입니다. 비늘은 갑옷이자 용(Dragon)의 상징인 반면, 매끈한 피부는 뱀이나 요물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불결하다고 여겼습니다.

 

갈치 역시 비늘이 없기에 금지 품목입니다.

 

신성한 제사상에는

비늘이 있어 깨끗하고,

이름의 격이 높은(어, 기 등으로 끝나는) 생선만이 올라갈 자격이 있었습니다.


형식보다는 마음, 하지만 알면 더 깊어지는 예법

지금까지 살펴본 제사상 금기 음식들의 공통점은 명확합니다.

 

조상신을 쫓아낼 수 있는

강한 양기(퇴마력)를 가졌거나,

제사상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불결함을 가진 음식들이라는 것입니다.

 

즉, 이 복잡한 금기들은 단순히 하지 말라는 억압이 아니라, 조상님이 편안하게 머물다 가시길 바라는 후손들의 지극한 배려가 만들어낸 디테일입니다.

 

물론 시대가 변했습니다.

최근에는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셨다면 피자나 치킨을 올리기도 하고,

복숭아 통조림을 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형식이 마음을 앞설 수는 없기에, 가족들이 합의했다면 그 어떤 음식도 훌륭한 제수용품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왜 이런 금기를 만들었는지, 그 속에 담긴 '마음의 원리'를 이해한다면 이번 설 차례상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요?

 

다가오는 설날, 형식에 얽매여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조상님과 따뜻하게 '접속'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