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신앙

[제주도 신화] 초공본풀이와 유씨 부인 이야기

주머니괴물 2026. 1. 17. 23:19

제주도 무당의 조상은 누구일까요? 육지와는 다른 제주 무속의 기원, '초공본풀이'를 통해 삼형제가 벼슬을 버리고 무당이 되어 어머니를 구하고 원수를 갚는 영웅적 서사를 소개합니다.

 

제주도 신화
제주도 심방의 무구

 

한반도 육지에서 무당이 되는 과정은 대개 비슷합니다. 원인 모를 병(신병)을 앓고, 극한의 고통 끝에 내림굿을 통해 치유자가 되는 '상처 입은 치유자'의 서사입니다.

 

하지만 바다 건너 제주도의 무조(巫祖, 무당의 조상) 신화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단순히 병을 고치기 위해 무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억울함을 풀고 소중한 존재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무당의 길을 선택하는 '영웅적 면모'가 두드러집니다.

 

오늘은 제주 큰굿의 핵심인 <초공본풀이>와 <유씨 부인> 이야기를 통해, 제주 사람들이 생각했던 무당의 권위와 그 시작점에 대해 이야기해 봅니다.


초공본풀이

제주도 심방의 무구

 

육지의 무속은 지역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어도 전반적으로 병고와 시련을 겪은 뒤 치료자가 된다는 맥락은 동일합니다. 하지만  제주도 무조신화는 육지와 다소 다른 면모를 보입니다.

 

제주도 무당의 조상은 초공과 유씨 부인입니다. [초공본풀이]에 의하면 초공은 자지명왕(紫芝明王) 아가씨와 주자대사(朱子大師)가 접촉해 태어난 세 형제를 말합니다. 이 설화는 하늘에서 지리산에 내려온 성모천왕이 법우화상과 결혼하여 낳은 여덟명의 딸에서 시작하여 그의 자손에게 무술(巫術)을 가르쳤다는 전설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지리산 성모천왕 전설에는 하늘에서 쫓겨난 여신이 무당이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없습니다.

 

제주도 무당의 시조는 '초공'이라 불리는 세 형제입니다. 이들의 탄생 설화는 우주적인 스케일을 자랑합니다.

 

초공 세 형제 이야기는, 그들이 아버지를 만나 과거에 부당하게 낙방한 것을 원망하자 아버지가 여러 굿거리의 신복(神服)을 마련하고 시왕맞이를 하면 좋아진다고 하여 여러 가지 굿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따르면 무업(巫業)이 주자대사(朱子大師)에 의해 전수된 것으로 보입니다.

 

세 형제는 삼천천 제석궁 깊은 곳에 갇힌 어머니를 살려내기 위해서 목수인 너도령과 의형제를 맺고 오동나무를 잘라 말가죽으로 북과 장구를 만들었습니다. 이 북과 장구를 7일 동안 두드리며 어머니가 깊은 궁에서 얕은 궁으로 살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해서 결국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서 북은 주술적 힘의 요소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용준의 제주도 신화 '초공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주도 심방의 무구

 

1. 신성한 탄생과 시련

천하임정국 대감과 지하금진국 부인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시주 온 스님에게 사주를 물어 조언대로 불공을 드리고 보시를 하여 아리따운 딸을 낳았습니다. 이름을 왕대월석금하능 노가단풍 자지명왕 아가씨라 하였습니다. 15세에 부모가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각각 천하공사, 지하공사를 살러 가야 했습니다. 딸 노가단풍 아가씨를 데리고 갈 수 없어 방안에 가두어 자물쇠로 잠근 채 계집종으로 하여금 구멍으로 밥을 주며 키우도록 하였습니다.

 

이때 황금산 도단 땅에서는 삼천 선비들이 글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달빛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다가 방에 갇힌 자지명왕 아가씨가 가장 아름답다고 한 대사가 말 했습니다. 대사는 그녀를 찾아가 권제삼문을 받아오는 자에게는 삼천 냥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데 주자대사가 자원했습니다. 그는 기지와 주력으로 자물쇠를 열어 노가단풍 아가씨를 방에서 나오게 한 뒤 그 머리를 세 번 쓰다듬었습니다. 아가씨는 아기를 갖게 되고 성난 아버지가 그녀를 죽이려다가 차마 죽이지 못하고 추방해 버렸습니다.

 

다리를 건너고 바다를 건너는 고생 끝에 황금산 주자대사를 만나지만 맨손으로 벼를 까는 과제를 완수한 다음에야 비로소 맞이합니다. 대사는 부부살림을 할 수 없어 불도 땅으로 내려 보내 그곳에서 아들 셋을 각각 왼쪽, 오른쪽 겨드랑이와 가슴으로 낳았습니다. 이들이 훗날 무당의 조상이 되는 '초공 삼형제'입니다.

 

2. 삼 형제의 시련

삼형제는 어머니와 가난하게 살았는데 아버지 없는 후레자식이라고 구박을 받았습니다. 돈이 없어 서당 심부름을 하며 어깨 너머로 공부하였는데 과거를 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과거를 보러 가는 삼천 선비들이 삼형제를 시기하여 떼어놓고자 삼형제를 속여 배나무 위에 올려놓고 도망치거나 필묵을 모두 사버려서 시험을 칠 수 없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도움을 주는 자들이 있어서 드디어 삼형제는 과거에 급제합니다. 삼천 선비는 집요하게 방해해서 삼형제가 중의 아들이라고 고했고 급제는 취소되었습니다. 그러나 활쏘기에서 크게 득점하여 다시 급제합니다. 삼천 선비는 이번에는 삼형제의 어머니를 깊은 궁에 가두어버렸습니다.

 

3. 무당이 된 삼 형제

삼형제는 외할아버지의 권고로 황금산 도단 땅의 주자대사를 찾아갔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찾아가려면 팔자를 그르쳐야 한다, 즉 무당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과거 급제하여 벼슬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다는 뜻으로 굿거리의 좋은 점을 문답식으로 설득하는 과정이 이루어집니다. 어머니를 찾는 방법 역시 부당의 무구가 지닌 주력으로 가능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무구를 만들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 종류의 칼, 즉 하인을 죽이는 칼, 중인을 죽이는 칼, 그리고 양반을 죽이는 제일 큰 칼을 만들었습니다. 삼형제는 이 칼로 천추의 원수인 삼천 선비의 모가지를 베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양반의 원수를 갚느라고 삼형제가 무당의 기구를 만들고 굿하는 법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1930년대에 수집된 제주도 [초공본풀이]와 내용이 거의 같습니다. 일부 다른 부분은 있지만 큰 맥락은 거의 동일하며, 천하대감과 지하부인이라는 우주적 전일성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신성한 혼인과 거기서 출생된 신성한 세 영웅의 시련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보통의 무조신화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수난사뿐만 아니라 남성세계의 갈등을 묘사하고, 잃어버린 어머니를 되찾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유 씨 부인 이야기

제주도 무당 '심방'

 

현용준(1986)이 정리한 [제주도 신화]에서 정승의 딸 유 씨 부인에 관한 이야기는 초공과는 별도로 같은 시기에 다른 고을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유 씨 부인이 어릴 때 어떤 스님이 무당이 될 징표를 주었음에도 이를 모르고 7년마다 반복되는 병고에 시달렸습니다. 그녀가 77세에 이르러서야 깨닫고, 숨겨두었던 징표를 찾는 순간 병이 깨끗이 나았고 이로부터 굿을 하여 죽은 자를 살려냈다는 설화입니다.

 

그래서 제주도 설화에서는 초공 세 형제가 시초한 무업(巫業)을 유 씨 부인, 혹은 유 씨의 어머니 대선생이 계승하여 처음 굿을 했다고 봅니다. 유 씨 부인이 신성한 소명, 신병, 신물의 재발견과 신병의 치유, 치료자로서 죽은 자를 살리고 큰 굿을 주재하는 이야기입니다.


육지의 무속이 개인의 고통에서 출발해 타인을 치유하는 성숙의 과정이라면, 제주의 무속은 잃어버린 혈육을 되찾고 악을 처단하는 투쟁과 회복의 드라마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제주도의 굿을 볼 때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한 편의 장엄한 서사시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신화적 배경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고 문헌]

  • 현용준, <제주도 신화>, 1986.
  • <초공본풀이> 구술 채록본 재구성.